1. 송정그림마을

 

소개

부여 송정그림마을은 작고 조용한 마을에 벽화가 그려지면서 활기와 정감 넘치는 벽화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2010년 1월부터 8월까지 총 8개월간의 사업 기간을 거쳐 부여군 최초의 벽화마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벽화 마을 사업은 한국전통 문화학교의 한국전통 미술공예과 학생들의 협조로 진행되었으며, 송정1리 14개 공간을 대상으로 벽화가 제작됐다. 송정그림마을에는 "삶의 따뜻함", "생명의 시작", "자연의 소중함", "추억의 아름다움"이라는 4개의 테마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을이 작아 천천히 산책하며 돌아보기 좋다. 낮은 돌담과 벽화가 자연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마을 주변에는 서동요 테마파크, 송정저수지 등의 관광지가 있어 함께 방문하여 돌아볼 수 있다.

위치

충남 부여군

 

2. 백마강레저파크

 

소개

충남 부여에 위치한 종합레저파크로 4계절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카라반 시설과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레저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상스키, 웨이크 보드 및 바나나보트를 비롯한 놀이기구 4종을 즐길 수 있으며 여름에는 야외수영장 또한 이용할 수 있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234-2

 

3. 백제문화단지

 

소개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는 찬란한 백제문화를 둘러볼 수 있는 백제문화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17년에 걸쳐 완성한 백제의 문화유산 집합소로서 SBS <런닝맨>에도 등장했다. 정우성, 한효주 편의 최종 대결인 경품 몰아주기 레이스가 펼쳐진 곳이 바로 백제문화단지다. 출연진이 연신 ‘너무 넓다’고 고충을 토로했을 만큼 넓다. 전체 면적이 327만 6,000㎡에 달한다. 그 위에 웅장한 백제문화의 흔적이 남았다.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 백제의 왕실 사찰 능사는 부여읍 능산리 유적을 실물 크기로 복원했다. 중문인 대통문을 지나 마주하는 능사 오층석탑은 단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물이다. 위례성은 한성백제 시기의 성으로 사비궁과는 다른 시대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제형루에 올라서면 단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

 

 

 

4. 롯데부여리조트

 

소개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331만㎡ 대지 위에 들어서는 롯데부여리조트는 문화와 역사체험, 휴식과 휴양, 스포츠와 놀이 등 가족 단위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테마리조트이다. 롯데부여리조트 콘도미니엄은 약 3만 2천㎡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0층으로 이뤄져 총 322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객실은 VIP를 위한 럭셔리룸(14실), 해외관광객 및 소규모 고객을 위한 디럭스룸(68실), 가족단위 고객을 위한 패밀리룸(84실)과 스위트룸(156실)으로 구성된다. 부대시설로는 인공파도풀장과 스파 등을 갖춘 약 4천㎡ 규모의 실내 아쿠아풀, 4개의 연회장, 최첨단 설비의 세미나실, 330석 규모의 레스토랑 및 카페테리아가 들어섰다. 비즈니스센터, 셀프 코인 세탁실, 아이들을 위한 키즈 클럽도 갖추어져 있다.기존 부여 및 인근 공주지역에 잔존하는 백제유적지에 더하여 충청남도가 조성중인 역사재현촌과 백제역사문화관이 연계된 백제역사문화관광단지이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00

 

5. 백제역사문화관

 

소개

백제문화단지내에 건립된 백제역사문화관은 출토 유물의 전시가 아닌 백제시대의 중요한 유적이나 역사적 사실을 축소모형이나 그래픽 또는 영상으로 표현하여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예를 들면, 성왕의 사비천도행렬, 사비도성, 미륵사, 정지산 제사유적 등은 축소모형으로 재현하고, 금동대향로, 일본속의 백제유물, 은산별신제, 무령왕릉 등은 영상으로 설명과 함께 보여준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

 

6. 국립부여박물관

 

소개

* 부여의 문화를 한 눈에 만나는, 국립부여박물관 *
부여시내 남동쪽 금성산 기슭에 위치한 국립부여박물관은 1929년 재단법인 '부여 고적보존회' 가 발족되어 백제의 문화재.유물을 모아 부소산 남쪽에 자리한 조선시대 관아의 객사에 전시하게 된 것이 국립부여박물관의 시작이다. 1939년부터는 '조선총독부 박물관 부여분관' 이라 하여 비로소 '부여박물관' 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1970년에는 부소산 남쪽기슭에 새 박물관을 지어 부여지역을 비롯하여 백제권에 흩어진 백제문화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였다.
1993년 8월 6일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모습으로 개관하였다. 국립 부여 박물관은 61,429㎡의 면적에 4개의 전시실과 야외유물전시장을 마련하고 약 1,000여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국립부여박물관의 구조 *
건물 설계 당시 한국의 전통양식을 도입하여 8각형의 중정(中庭)을 중심에 두고 상설전시실인 선사실·역사실·불교미술실과 야외전시실을 배치하였다. 선사실에는 부여지방을 중심으로 충남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유물들을, 역사실에는 사비시대의 백제 유물과 삼국시대 유물들을 전시하였다. 불교미술실에는 사비시대 백제의 불교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야외전시실에는 불상과 석탑 등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7. 부여 능산리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개

* 백제 시대의 무덤의 집합체, 백제왕릉원 (능산리고분군)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있는 백제 때의 무덤들로 고분군은 해발 121m의 능산리 산의 남사면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고분군이 위치한 자리는 이른바, 풍수지리사상에 의해 점지(占地)된 전형적인 묘지로서의 지형을 갖추었다. 뒷산을 주산으로 하고, 동쪽에 청룡, 서쪽에 백호, 앞산인 염창리 산을 남쪽의 주작으로 삼았고, 묘지의 전방 약 200m거리에 능산리 천이 서류하는 남향의 왕실의 공동묘지이다. 고분은 전열 3기 후열 3기, 그리고 맨 뒤 제일 높은 곳에서 1기가 더 발견되어, 지금은 모두 7기로 이루어진 고분군이다.
 
고분의 분구는 모두 원형봉토분이며 크기는 대형,중형,소형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대형인 전열의 3기는 분구의 직경이 약 25~30m이고, 중형인 후열의 분구는 직경이 약 20~25m이며, 최후의 1기는 분구의 직경이 20m 내외이다. 1호분인 동하총은 장방형현실(玄室)과 연도(羨道)로 이루어진 단실묘(單室墓)이다. 현실과 길이 연도는 사면벽을 화강암과 편마암(片麻巖)의 거대한 1매 판석을 사용하였다. 석실 바닥의 중앙부에 모전석(模塼石)을 사용하여 길이 238cm, 너비 125cm, 높이 17.5cm 규모의 관대(棺臺)를 만들었는데, 상면을 들고 내부를 보면 당초에는 1인용 관대였으나 뒤에 양측으로 확장하여 2인용 관대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2호분인 중하총은 장방형의 석실과 비교적 긴 연도로 이루어진 단실묘이다. 천정형식은 터널형이며 벽체는 긴 장대석으로 축조하였다. 마치 송산리 6호분과 무령왕릉의 형식을 재료만 벽돌에서 장대석으로 바꾸어 놓은 형식이다.
 
석실전장은 672cm이고, 현실 길이 349cm, 너비 215.1cm, 벽고 130.4cm, 천정고 234.3cm이며 연도 길이 290cm, 너비 112.2㎝, 천정고 126.1cm이다. 3호분인 서하총은 장방형 석실과 비교적 짧은 연도로 이루어진 단실묘이다. 천정의 형식은 평사천정이며, 벽체는 거대한 판석 1매로 구성하였다. 이 형식은 7세기경 부여지방에서 크게 유행하여 주류를 이루었다. 석실전장은 471.6cm이고, 현실 길이 314cm, 너비 136cm, 벽고 131cm, 천정고 165cm이며, 연도 길이 131cm, 너비 122cm, 천정고 131cm이다. 4호분인 서상총, 5호분인 중상총, 6호분인 동상총 등은 판석조의 단실묘이며, 천정 형식은 평사천정으로 이루어졌다. 7호분은 장방형석실과 짧은 연도로 된 단실묘이며, 벽체와 천정은 각면 4매의 판석으로 조립하였다. 석실전장은 355cm이고 현실 길이 139cm, 너비 62.5cm, 벽고 100cm, 천장고 145cm이며, 연도 길이 55cm, 너비 90cm, 천장고 100cm이다.
 
* 알면 재미있는 능산리고분군의 조성 시기 *
능산리고분군은 연대순으로 보면 중하총, 동하총, 서하총 순으로 축조되었다. 중하총을 제일 이른 시기로 보는 이유는 터널형식은 공주 송산리의 무령왕릉과 6호분의 형식과 같고, 단지 재료만 전에서 돌로 대치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분 주인공의 추정은 중하총은 웅진에서 즉위하여 사비에서 사망한 성왕의 능으로 추정하고, 다음 동하총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으로 추정하며, 서하총 이하 평사천정형식은 사비시대 중기 이후에 유행한 형식이므로 각각 시기에 맞는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고분군의 서쪽 200m 거리에서 능사(陵寺)(원찰(願刹))터가 발굴되었고 그곳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와 창왕명석조사리감의 출토는 능산리 고분군이 왕실묘지라는 것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8. 부여 정림사지.정림사지 오층석탑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개

* 백제의 사찰이 있던 터, 정림사지 *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조각 중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 라는 글이 발견되었다. 태평팔년은 요(遼)의 연호(年號)이며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해당된다. 이 문자와의 발견수는 이곳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 중에 가장 수량이 많았으며 고려 재건시의 정림사를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이다. 가람배치형식(伽藍配置形式)을 보면 전형적인 일탑식배치(一塔式配置)로 남으로부터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의 순서로 일직선상(一直線上)에 세워졌으며 주위(周圍)를 회랑(廻廊)으로 구획(區劃)하였다. 그러나 특이하게 가람 중심부를 둘러싼 복도의 형태가 정사각형이 아닌 북쪽의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으로 되어있다.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절 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1933 년에 지어졌다. 백제 때에 세워진 5층석탑(국보 제9호)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있다. 출토유물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장식기와를 비롯하여 백제 벼루, 토기와 흙으로 빚은 불상들이 있다.

* 국보 제9호로 유명한, 정림사지오층석탑 *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 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 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석탑은 익산(益山)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과 함께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다. 목조건물의 가구(架構)를 모방하고 있으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정돈된 형태에서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의 형태가 장중하고 명쾌한 기풍을 풍겨준다. 초층탑신(初層塔身) 4면에는 당(唐)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百濟)를 멸한 다음, 그 기공문(紀功文)을 새겨 넣었으나 이는 탑이 건립된 훨씬 뒤의 일이다. 이곳 일대의 발굴조사에서 정림사명(定林寺銘)이 들어 있는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9.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소개

* 백제 문화의 보고, 부소산과 부소산성 *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호),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迎日樓), 반월루(半月樓), 고란사(皐蘭寺),낙화암(落花巖),사방의 문지(門址),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년(동성왕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신라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 문화를 만난다, 부소산의 유적지]

* 삼충사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면 삼충사가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린다.

* 영일루
영일루는 부소산성의 맨 동쪽 산봉우리에 세워져 백제왕과 귀족들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하고,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했던 영일대에 세운 누각이다.

* 군창지
일명 만리창(萬里倉)이라 불렀던 이곳은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이다.

* 수혈병영지
군창지를 조금 지나면 움집이 보인다. 움집은 백제 때 군인들의 움막을 발굴,복원한 것으로 1m 가량 움을 파고, 사방을 나무나 짚으로 벽을 두른 뒤 초가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원래 움집터와 저장고를 발굴한 곳에 전시실을 지어 구조를 자세히 살필수 있게 하였다.

* 사자루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호)이 발견되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 백화정
낙화암 절벽위에 세워진 육각지붕의 정자가 백화정이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은 백제멸망 당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숭고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扶風詩社)라는 시모임에서 세웠다.

* 궁녀사
반월루 광장에서 동북쪽 태자골로 조금 내려가면 궁녀사가 나온다. 이 궁녀사는 백제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은 백제 여인들의 충절을 추모하고 그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고자,1965년에 세웠다. 10월 백제문화제 때 제향을 올리고 있다.

* 부여관북리백제유적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부여 문화재연구소 남쪽일대 184필지 95,048㎡(28,780평) 중 33필지 2,102㎡는 1983년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다. 1982년부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여 19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19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19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의 궁궐 중 고구려의 안학궁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신라와 백제의 왕궁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백제시대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도성의 일부 유적이 밝혀진 것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10. 부여 나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소개

* 백제 수도 방어의 군사적 요충지, 부여 나성 *

백제의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둘레 8.4㎞의 성이다.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부여시가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양에 있는 나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나성 중의 하나이며, 웅진 (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긴 538년경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부소산성의 동문이 있던 자리에서 시작하여 금강변까지 흙으로 쌓아만든 것으로,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다. 현재는 청산성 동쪽에 20m 정도와, 석목리에서 동문 다리까지, 그리고 필서봉에서 염창리까지 희미하게 그 형적이 남아 있다. 성의 바깥쪽 벽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안쪽 벽은 완만하여, 성 위에서 말을 달릴 만한 길이 있고 곳곳에 초소가 있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필서봉에는 횃불을 올리던 봉수터와 건물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는 백제의 왕궁을 비롯하여 관청·민가·절·상가 및 방어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나성의 전체적인 구조는 남쪽과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또 물길도 파놓아서 자연적인 2중 구조를 이루고 있다.

* 부여나성의 의의 *

백제나성은 백제 수도를 지키기 위한 외곽성이었으므로 백제 성왕(聖王:523∼554) 때를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여나성은 청산성·청마산성과 함께 수도보호를 위한 외곽방어시설로 중요한 성이었다.

[문화재 현황]
t* 사적 제 58호(1963년 1월 21일
* 면적 - 554,591㎡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문로142번길 1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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